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엘 클라시코 (문단 편집) === 2008-09 시즌까지 === * 엘 클라시코의 역사는 1902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. 그해 3월 창단한 레알 마드리드와 창단 3년차였던 바르셀로나는 [[코파 델 레이]]의 전신이 된 코파 데 라 코로나시온에서 1902년 5월 13일 처음으로 맞붙었는데, 이 경기는 바르셀로나가 3:1로 이겼다고 한다. * 엘 클라시코의 최고 득점차 경기는 1943년 [[코파 델 레이|코파 델 헤네랄리시모]] 4강 2차전으로, 마드리드가 11:1로 승리하였다. 하지만 이는 1차전에 바르사가 3:1로 승리한 이후 '''군부에서 요원을 보내 협박해서 나온 결과'''였다. 눈엣가시였던 바르셀로나가 본인의 직위를 내건 대회에서 우승하는 꼴을 볼 수 없었던 프랑코는 2차전 경기 전 '''"당신들이 마음놓고 축구에서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는 것도 다 우리 정권이 그것을 눈감아주기 때문이지"'''라고 하였다. 압박을 받은 바르사 선수들은 제대로 경기에 임할 수 없었고 전반전에만 8:0, 총 11:1로 경기가 끝났다. 경기 후 바르사 선수들은 언론을 통해 이 사실을 알렸고, 스페인 축협은 이 경기를 무효로 지정했으나 공식 기록에는 남아 있다.[* 다만, 이 사건을 가지고 [[프란시스코 프랑코]] 정권이 레알 마드리드를 지원했다고 할 수는 없다. 프랑코는 레알이 좋아서가 아니라 바르셀로나가 싫어서 경기를 조작한 것이었고, 그 증거로는 이 시즌 [[코파 델 레이|코파 델 헤네랄리시모]] 우승팀은 프랑코에 끊임없이 저항하던 바스크의 팀 [[아틀레틱 클루브]]였다.당시 빌바오는 로컬 플레이어들로만 선수를 채웠다.] * 11:1 경기를 뺀 공식 기록으로는 1935년 레알 마드리드가 8:2로 승리한 경기가 최다 점수차 경기이다. * 바르셀로나의 최다 득점 경기는 1950년 7:2로 승리한 경기다. * 2007-08 시즌, 레알 마드리드의 홈 구장 [[에스타디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]]에서 바르셀로나가 레알 마드리드에게 [[가드 오브 아너|파시요]]를 해주는 사건이 발생해 화제가 되었다. 레알 마드리드가 우승을 확정지은 뒤 바로 다음 홈 경기가 엘 클라시코였기 때문에 벌어진 일인데, 당시 바르셀로나의 대표 격 선수들이었던 [[사무엘 에투]]와 [[데쿠]]가 경고 누적으로 불참해 '박수 쳐주기 싫어서 고의로 경고를 받은 것 아니냐'는 의혹까지 돌았다.[* 해당 경기 해설을 맡은 [[한준희]] 위원은 이에 대해 "정말 분하다면 박수 쳐준 다음 레알 마드리드를 부수려고 하는 게 정상이지, 박수 치는 게 싫어서 경기에 안 나오진 않았을 것이다."라고 말했다.] 우승을 축하해주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었으나 진짜 치욕적인 것은 이어진 경기까지 1-4로 박살났다는 것이다. 전반기에 있었던 바르샤 홈경기에서도 레알이 1:0으로 승리했기 때문에 2007-08시즌 레알이 엘 클라시코 더블을 기록했다. 레알의 엘클라시코 2연승과 더블은 1983-84 시즌 이후 무려 24시즌 만이다. * 2008-09 시즌에는 바르셀로나가 홈경기에서 후반 막판 2골을 몰아넣고 승리하며 전 시즌의 굴욕을 갚았다. 그리고 후반기 레알 마드리드의 홈 경기에서 바르셀로나가 레알 마드리드를 6:2로 관광 태웠다. [[리오넬 메시]]가 꽤 많은 기회를 [[이케르 카시야스]]에게 막혀 날렸는데도 2골을 넣었을 정도로 바르셀로나의 공세가 계속되었고 [[차비 에르난데스]]는 무려 4어시스트를 기록했다. 바르셀로나 팬으로서는 전 시즌에 당한 수모를 어느 정도 갚은 것이고, 레알 마드리드 팬으로서는 잊고 싶은 기억이 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